2010년 11월 3일 수요일

글쓰기의 중요성

학부 학생들에게 글쓰기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많은 학생들은 "써야하는 것"이라고 말할 듯하다. 백일장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은 서로 무엇을 쓰는지 훔쳐보는 것처럼.

내가 학부생일 때도 큰 차이는 없었지만 점점 신입생들의 글쓰기 능력은 떨어진다고 느껴진다. 분명히 우리보다 더 비싸게 돈을 주고 논술수업을 받았을텐데.

상당수의 글은 짜임새가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무슨 글을 써야하는지 무딘 것 같다. 글 속에 여러 주제가 섞여있고 하나로 뭉쳐지지 못한다. 왜 그럴까? 상당히 많은 논술 수업은 강의자료를 제공한다. 강사가 꼼꼼히 정리해둔 자료는 학생들이 글을 쓸 때 참고하는 중요한, 그리고 유일한 자료이다. 바로 그 자료가 학생들의 시야를 한정해버린다.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이것이 충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은 강사의 문제점으로 치부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도 명백한 문제가 있다. 공부를 비재화(bad)로 생각하고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강사가 주는 것만 하게 된다. 학생들이 행하는 최대한의 검색은 네이버 지식인이다.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할까? 다들 글쓰기 싫어하니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간단히 트위터처럼 140자 내로 글 쓰기로 하면 될까? 하지만 140도 다 채우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말 한 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아무리 드라마처럼 살고 싶다고 하더라도 글 못 쓰는 사람을 누가 채용하려고 할 것인가?

이 글은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 지에 대해 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최근 나의 생각을 잠시 담아놓는 장소일 뿐이다. 그런데 개인 목적의 글을 읽으면서도 느끼는 바가 크다면 당장 펜을 잡고 글을 써보자.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읽어보자. 얼굴이 화끈거린다면 당장 글쓰기의 기초부터 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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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5일 일요일

유재석, 사...사사. 존경합니다.

버라이어티가 더 이상 버라이어티가 아닌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 어제(10/7/24) 무한도전에게  전해줄 찬사이다. 우리가 유재석을 보면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싶다. 어떻게 말벌에 쏘이면서까지 라디오 생방송에 참여하며 노래를 부르고 격렬한 춤까지 춘단 말인가. 우리, 아니 적어도 나 조차 유재석을 보기에 부끄러워진다. 어떻게 저런 프로정신이 존재할 수 있을까?

요즘 미디어에서 '존경하고 싶은 인물'은 흔치 않다. 게다가 개그맨이면 더욱 그렇다. 항상 우리에게 웃음을 주기 때문에서 일까, 그들의 내면을 보기가 더욱 어렵다. 그런데 유재석은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지만 감동도 같이 준다. 그의 내면을 느끼면 느낄수록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내가 저렇게 노력해본 적이 있었을까?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당신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입니까?

어제 영화 '인셉션'을 보았습니다. (스포일러는 없으니 걱정마세요.) 최근 인간의 상상력을 가늠할 영화를 못 보았는데 드디어 보았습니다. 최근 헐리우드 영화는 관객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줄 충분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객의 상상력을 무너뜨릴 기술은 자주 나타나지 않습니다. 관객은 익숙한 줄거리를 다른 틀에서 보고자 영화관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비단 영화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비자의 상상력은 누가 무너뜨리죠? 소비자는 신제품을 통해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익숙한 경험을 즐기기 위해서 신제품을 구매하지 않죠. 그것은 기존의 제품이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래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시대에는 더 그렇습니다. 익숙한 경험은 지출유인을 자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혁신이 중심인 사회는 영화관이든 쇼핑몰이든 소비자의 상상력이 새로운 상상력으로 대체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입니까? 당신은 새로운 상상력을 창조할 수 있습니까?

하루를 길게 쓰는 방법

하루를 길게 쓰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몇 년전 인기를 끌었던 '아침형 인간'이 생각납니다. 저도 가끔은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고자 일찍 일어나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그렇게 실패와 실패를 거듭하고, 오늘 또 아침에 일어나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계속 실패할까요? 하루를 길게 쓰겠다는 것이 목적인데, 목적에 부합한 결과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컨디션을 새로운 시간대에 맞추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마치 시차 적응하는 것과 같지요. 새로운 시간대에 가서 적응하는 것은 그 사회에 적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시간 대에 다른 시차에 몸을 적응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뚜렷한 주관이 없다면 더 그렇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차는 동시간대의 사람들과 다른 시차를 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페이스를 잘 유지해야 하지요. 오늘 새로운 시차에 적응하려고 집에 일찍 왔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면서 무엇이 나의 페이스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잘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일단 몇 일 더 이렇게 지내보아야 알겠지요. 페이스만 잘 조절하면 아침형 인간이 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하튼 기분 좋네요.

창의적인 기업에 가고 싶으면 창의적인 사람이 되자

20대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일까요? 좋은 첫 직장을 구하고 싶은 것이죠. 그런데 물음표가 하나 생깁니다. '창의적인 회사로 가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창의적인 회사로 갈 수 있죠? "구글에 취직하려면 어떤 스펙을 쌓아야 할까요?"라는 질문 속에는 맹점이 하나 있습니다. 창의적인 기업은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합니다. 그럼 어떻게 창의적인 인재를 구별해낼까요? 한 사람의 주관이 뚜렷한지, 자신의 분야에서 남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가 제일 중요합니다. 이런 것은 기업이 원하는 '스펙'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창의적인 인재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깊고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즉, 여러분들은 '나'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왕도가 없지요. 쉽게 쌓은 돌담은 쉽게 무너지는 것처럼 단련을 해야 합니다.

원론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길은 정답이 없습니다. 16년 동안 교육을 받고 대학을 졸업하는 많은 학생들은 여전히 '정답'을 찾고 있습니다.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자신의 답을 찾아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회에서 규정(?)했다고 믿는 정답을 쫓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결론을 도출하게 됩니다. 이들은 비슷한 경로에서 경쟁을 하게 되지요. 그럼 누가 경쟁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될까요?

저는 사회가 정답을 규정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관념 속에서 정의한 정답이겠지요. 사회는 생물계처럼 정말 무궁무진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정답은 없고 자신의 답만 존재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 입니다. 창의적인 기업이 원하는 인재들은 자신의 답을 가지고 있는 인재를 찾고 있습니다.

혹자는 제가 창의적인 기업에 속해있지 않기에 믿기 어렵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작년 초 관심 있었던 모 컨설팅기업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이미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였기에 단 한 개의 기업에만 입사지원서를 썼지요. 낙방하였으나 그들은 아주 친절하게 이유를 알려주었습니다. 저의 경험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낙심하였으나 솔직히 이야기해준 그 기업에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저는 그들의 예측을 보기좋게 무너뜨리기 위해 '창의적인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는 이 시점에도 그렇죠. 그리고 대학원 공부는 그 무엇보다도 창의적이여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야 하기 때문이죠.

스펙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창의적이기 위해 노력하세요. 그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자신의 상식부터 해체해야 하니깐요.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식은 18세 이전까지 자신이 쌓아온 편견이다라고요. 우리의 편견을 무너뜨리고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의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여러분들은 창의적인 인재가 될 수 있습니다.

2010년 7월 22일 목요일

한국교육에 필요한 것은 철학입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는 동안, 교육은 비대칭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대학진학률이 가능한 최대치에 가까이 올라와서 그런지, 아니면 교육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한국의 교육모델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하는 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저는 두 가지가 모두 타당한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압축성장에서 발생되는 회의감이기 때문입니다.

Barro-Lee(2010)의 Educational Attainment 자료를 보면, 15세 이상 인구의 평균교육년수는 1950년에 4.5년에서 2010년 현재 11.8년입니다. 60년 동안 7.3년이나 증가한 것이지요. 반면에 미국은 1950년에 8.4년에서 2010년 현재 12.2년입니다. 이것을 보면 한국은 정말 고속성장을 한 것이지요.

그럼 지금 한국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이 글의 목적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교육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최근 교육계 이슈는 핀란드형 교육제도입니다. 이것은 학생들이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교육환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교육제도를 찾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핀란드형 교육제도에 관한 책으로 후쿠다 세이지의 '핀란드 교실혁명'을 추천해드리고, 후자로는 박하식의 '좋은 학교를 넘어 위대한 학교로'를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현재 서점가에 정말 다양한 책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이들은 명료하게 교육철학을 짚어내었기에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자녀교육을 위해 어떤 학교, 어떤 학원, 그리고 어떤 교재를 선택하느냐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교육철학의 부재 속에서는 학부모와 아이들 모두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의문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철학입니다.

애플의 학습효과

얼마전에 박경철 원장님이 경제포커스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었죠. 애플의 성장이 삼성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요. 저도 동의합니다. 애플은 시장의 게임을 바꾼 것 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지향해야 하는 점도 분명히 알려주었지요.

대표적인 사례가 아마존의 킨들(Kindle)이라고 생각합니다. 애플이 iPad를 출시하면서 타겟으로 삼은 고객층 중의 하나가 eBook 유저들입니다. 이를 위해 애플은 eBook 앱스토어를 준비했구요. 그런데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킨들입니다. 얼마전 기사를 보니 아마존에서 이렇게 말했더군요. 킨들용 eBook이 hardcopy 판매량을 초과했으며, 앞으로 다양한 기기에서 킨들을 사용할 수 있게끔 한다구요. 애플이 iOS를 통해 전자책을 공급하지만 아마존은 애플을 비롯한 많은 모바일 디바이스에 전자책을 공급할 수 있게끔 한답니다.

이것이야 말로 애플이 이뤄낸 학습효과가 아닐까 싶네요. 물론 전자책의 보급정도는 높지 않지만 경쟁의 초기조건은 아마존이 잘 만든 듯 싶습니다. 이제 전자책 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잠재적 진입자를 위한 진입장벽이 확실히 생겼습니다. 바로 '확장성'입니다. 애플의 학습효과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기업과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확장성'을 보유하지 못한다면 시장을 얼마나 지배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