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1일 수요일

최고 수준의 학문연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

작년 가을학기 때 대학강의에서 접할 수 있는 끝판왕(?) 강의를 들었습니다. 매주 과제를 제출하고 퀴즈를 보며 시험도 세 번이나 보았지요. 물론 그 정도 시험이 얼마나 힘드냐라고 타박하실 분들도 계시지만, 저희 학교에서 그 수업은 가히 전설적입니다.

교수님께서는 강의 홈페이지를 개설해놓으셨는데 학기 중에는 열기가 뜨거워서 가끔씩 느끼려고 가보기도 합니다. 이번 학기는 나태해진 내 자신을 반성하기 위해 종종 갔었지요.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정신차리곤 했습니다.

이번 여름도 자칫 느슨해질까 걱정되어 오랜만에 교수님 홈페이지를 가보았습니다. 새로운 자료가 하나 업데이트 되었더군요. '연구실 신입생 메뉴얼.' 두근거리는 마음에 메뉴얼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최근에 가장 많이 고민했던 그것을 발견하고 말았지요.

'최고 수준의 학문연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

흔히 대학생을 '지성인'이라고 말합니다. 요즘은 대학교육을 받거나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성인에 대해 높은 기준을 잡고 있지만 여전히 higher educated person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대학교육을 왜 받을까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대학생을 지성인이라고 하는데 저는 지성인이라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여기서 비롯되지요.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학교육을 받지만 지식생산에 참여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한국교육은 여전히 lecturer 위주의 강의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강의는 많은 지식을 단시간에 받아들이기에 좋습니다. 하지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생산보다는 습득에 집중하게 됩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배우지만 그것을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는 모른다는 것이죠.

제가 중등교육을 받을 때를 떠올리면 이 말이 생각납니다. "이 과목들 배워도 나중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  우리가 써먹을 지식을 배우려면 습득위주의 교육보다 경험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습득위주의 교육은 필요합니다. 혁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습득이 혁신에 영향을 주는지는 배우지 못했죠. 그것은 자신이 직접 찾아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긴 학창시절 동안 습득만 하였고, 경험을 못했습니다.

제 고민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습득을 할 수 있을까? 수능공부를 할 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가급적이면 드러내지 않으려고 헀었죠. 다른 학생이 저보다 성적이 잘나오게 되면 안되니깐요. 어떤 교재가 좋다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떤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이런 것이 하나의 고급정보가 되어서 유통채널 하에서만 공급이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제가 각박한 환경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일부 학생들이 학교 사물함에 책을 보관하는 것을 꺼려하는지 이유를 들어보면 각박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대학생이 되어도 저는 경험을 못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도 우리, 그리고 내가 왜 그리 공부를 해야하는지 알려주지 않거든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는 가장 보편적인 답은 존재하지만 말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지요.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지식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입니다.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배운 지식을 가공해야 합니다. 그 과정은 글쓰기를 통해서 이루어지지요.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경험'입니다. 글 쓰는 능력을 단련하는 과정이 '경험'이고 이것이 지식생산의 도구입니다.

처음 글쓰기는 어렵지요. 바로 '경험'은 우리가 직접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련을 통해 글 쓰는 능력이 좋아짐에 따라 내가 배운 지식을 잘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지식의 습득은 활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경험'이라는 요소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의 습득과 글쓰기라는 경험이 함께 있어야만 지식을 활용할 수 있고 이것이 혁신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리고 지식의 공유는 경험을 더 단단하게 해줍니다. 아무리 글을 잘 읽더라도 그 글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모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공유하지 않는 습관에 길들여지면 경험할 수 있는 채널이 사라지게 됩니다. 지식은 공유가 될수록 시너지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죠. 좋은 정보만 나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글 쓰는 훈련을 하면서 경험을 쌓고 타인과 지식을 나눔으로써 단련이 됩니다. 저는 이것을 간과했었던 것이죠. 저는 지성인은 지식을 생산할 줄 아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저는 생산할 줄 몰랐기에 지성인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지금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도 질 좋은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인데도 말입니다.

'최고 수준의 학문연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에서 저는 '기여'를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학문연구를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기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교수님께서 콕 찝어서 말씀하시니 부끄럽네요. 이제는 부끄럽지 않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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